프론토실은 최초로 상용화된 항균제로 게르하르트 도마크에 의해 1932년에 개발되었습니다. 프론토실은 설폰아미드 계열의 항균제로 다양한 세균 감염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물입니다.
프론토실 발견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독일의 이게파르벤 제약회사에서 화학 염료를 연구하던 중 염료의 항균 가능성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화학 염료는 섬유 염색에 사용되었으나 도마크는 염료가 세균 감염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마크의 관심을 끈 염료는 설폰아미드 계열의 화합물이었습니다. 그는 설폰아미드 화합물이 세균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발견하였고 붉은색 염료 프론토실의 구조를 변형시켜 만든 화합물이 세균에 대한 강력한 항균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도마크의 팀은 실험용 쥐를 이용한 연구로 프론토실의 항균 효과를 입증했습니다. 쥐에게 치명적인 세균을 감염시킨 후 프론토실을 투여했을 때 쥐들은 회복되었고 프론토실이 인간에게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프론토실의 연구 과정에는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프론토실은 동물 실험에서 놀라운 효과를 보였지만 시험관에서 항균 작용을 보이지 않았고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도마크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는 연구를 계속 진행했고 마침내 프론토실이 체내에서 활성 성분인 설파닐아미드로 변환되면서 항균 작용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체내에서 활성 성분으로 변환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프론토실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고 항균제 개발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35년에 프론토실이 상용화되면서 최초의 항균제로서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도마크는 해당 공로를 인정받아 1939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며 염료 연구에서 시작해 최초의 상용화 항균제가 되었습니다.
페니실린보다 상용화가 빨랐던 이유
페니실린은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상용화는 194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가능해졌습니다. 이와 달리 프론토실은 1932년에 발견된 이후 빠르게 상용화되어 1935년에 시장에 출시되었습니다.
프론토실이 페니실린보다 늦게 발견되었음에도 상용화가 빨랐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프론토실은 화학적으로 합성된 약물로 대량 생산이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반면 초기의 페니실린은 곰팡이에서 추출해야 했기 때문에 생산 과정이 복잡하고 대량 생산이 어려웠습니다.
둘째 프론토실의 항균 메커니즘을 명확하게 이해되었고 효과가 실험적으로 빠르게 입증되었습니다. 반면 페니실린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작용 메커니즘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안정된 형태로 만들기가 어려웠습니다.
셋째 제2차 세계 대전인 당시의 상황도 한몫 했습니다. 전쟁 중에 많은 병사들이 세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었고 이로 인해 항균제가 절실해졌습니다. 프론토실은 이러한 상황에서 빠르게 사용될 수 있었던 반면 페니실린은 대량 생산 기술이 개발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