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머 베절릴 헐버트(Homer B. Hulbert)는 한국 역사 속에서 한글을 사랑한 외국인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한글 연구를 위해 한국에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헐버트가 한국에 온 이유는 선교와 교육 때문이었습니다. 1886년, 그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조선에 파견되었고, 당시 개신교 선교사들이 주도하던 육영공원이라는 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기 위해 조선을 찾았습니다.
한국에 온 이유
헐버트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한국 문화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문자 체계인 한글에 대해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한자를 사용했지만, 헐버트는 한글의 단순하면서 과학적 구조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다"라고 할 정도로 한글을 극찬했습니다.
헐버트는 한글이야말로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문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한국에서는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글이 복잡한 한자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서민들은 한자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헐버트는 이러한 점에서 한글이 훨씬 더 실용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 사람들이 더 쉽게 읽고 쓸 수 있도록 한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사용을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띄어쓰기 제안
헐버트는 한글이 매우 뛰어난 문자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한글은 대부분 글자들을 띄어 쓰지 않고 연속적으로 적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라는 문장을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로 적는 식이었습니다. 이렇게 글자를 붙여 쓰면, 읽는 사람이 문장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헐버트는 영어처럼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어 쓰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헐버트는 한글을 사용한 출판물과 교육 자료를 만들면서, 띄어쓰기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글을 읽을 때 단어와 단어 사이의 구분이 중요하다고 보았고, 띄어쓰기를 통해 한글이 더 쉽게 읽히고, 더 명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그가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시각일 것입니다. 영어는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어 쓰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고, 헐버트는 한글도 같은 방식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글 연구와 공헌
헐버트는 그의 주장대로 한글의 띄어쓰기를 실제로 출판물에 적용했습니다. 그의 저서 "The Korean Repository"에서는 한글 문장을 띄어쓰기로 작성해 출판했습니다. 이 출판물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새로운 한글 사용 방식에 대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헐버트는 이뿐만 아니라 한글 맞춤법과 발음 체계에도 관심을 두었고,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여러 논문과 글을 남겼습니다.
헐버트의 노력 덕분에 한글의 띄어쓰기가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1933년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에서 발표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띄어쓰기가 공식적으로 규칙으로 정해지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띄어쓰기 방식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헐버트의 유산
헐버트는 한국에서 선교사와 교육자로 활동했지만, 그 이상으로 한글 연구와 한글의 체계적인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그는 단순히 한글의 우수성을 칭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글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띄어쓰기와 같은 실용적인 제안을 했습니다. 헐버트는 한국을 떠난 후에도 한글과 한국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고, 나중에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한국을 위해 헌신했습니다.